출처: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03
1 — 두 자유의 구분: 콩스탕의 출발점
글은 19세기 프랑스 사상가 벵자맹 콩스탕(Benjamin Constant)의 고전적 구분에서 출발한다. 콩스탕은 자유를 두 가지로 나눈다. '고대인의 자유(the liberty of the ancients)'는 공적 문제에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는 자유이다. 아테네 시민이 광장(아고라)에서 법을 만들고 전쟁을 결의하던 것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현대인의 자유(the liberty of the moderns)'는 국가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사적 영역을 보호받는 자유이다. 신앙, 표현, 재산,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여기에 속한다.
이 구분은 곧 사적 자율성(private autonomy)과 공적 자율성(public autonomy)의 구분으로 치환된다. 자유주의는 사적 자율성 —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 — 의 보장을 핵심으로 삼는다. 민주주의는 공적 자율성 — 시민이 공동체의 규범과 법을 함께 만들어가는 능력 — 의 실현을 핵심으로 삼는다.
글은 자유주의 이념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통해 볼 때, 사적 자율성의 보장으로부터 공적 자율성으로 확대되어 왔다고 평가한다. 소극적 자유(간섭의 부재)에서 적극적 자유(참여와 자기결정)로의 확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글은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를 다원성(pluralism)과 자율성(autonomy)으로 정리한다. 다원성은 각 개인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 인생관, 종교관을 가지며, 이것은 오류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자연스러운 조건이다. 이 다원성을 억압하지 않고 공존하게 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기본 과제이다.
자유주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그 출발점은 국가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며, 생명, 자유 및 재산으로 표현되는 소극적 자유가 그 중심 내용을 이룬다. 정치권력의 강제성과 국가 능력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그러나 자유의 관념은 소극적 자유에 머물지 않았다. 정치적 자유 및 권리의 보장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율성을 더 적극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확장은 사회적·경제적 자유 및 권리의 보장, 문화적 권리, 심지어 환경의 권리로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출발점으로 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공적 문제에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 평등성으로부터 출발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누가 결정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 특정 계급이나 통치자가 아니라, 시민 전체가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폭정으로 전락할 수 있다. 51%의 다수가 49%의 소수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민주주의 없는 자유주의는 소수 엘리트의 특권 체제가 될 수 있다. 재산권과 자유를 가진 소수만이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구조가 그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정당성을 필요로 하고, 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제공하는 권리 보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양자의 상호 의존성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정치 이론과 현실적 헌법에서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모두를 기본권을 통해 표현하고 보장한다. 콩스탕이 구분한 현대인의 자유와 고대인의 자유 모두가 이론 및 현실에서 기본적 자유 속에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사적 자율성)와 참정권(공적 자율성)이 하나의 헌법 안에 공존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존 롤스(John Rawls)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을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로 체계화했다. 그의 핵심 장치는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다 —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모르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뒤에서 합리적 개인들이 합의할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는 사고 실험이다.
롤스는 상호성(reciprocity)을 정치적 합의의 기초로 삼는다. 내가 제안하는 원칙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유주의적 권리 보장과 민주주의적 합의 과정을 하나의 이론 안에 통합한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의사소통적 이성(communicative rationality)과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의사소통 권력을 행사할 때 요구되는 담론 원칙을 제시한다. 정치적 결정의 정당성은 그 결정이 내려지는 절차 —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사이의 합리적 토론 — 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에게 민주적 결정은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민주적 원칙에 따른 담론의 결과여야 한다. 정치인과 시민 모두가 공적 결정에 임할 때 담론 원칙의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글은 롤스와 하버마스의 정치철학 모두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정치 원리가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사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구분,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또는 인권과 인민 주권의 관념을 상호 연결하여 하나의 이론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가 다수결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민주주의는 시민의 의지가 개인의 특권에 의해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두 요구는 근본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
정치권력은 언제나 유혹적이고 그 행사는 폭력을 수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 정치 양자 모두 이러한 정치권력의 폭력적 행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보호의 방식이 다르기에 긴장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체제의 기본 원리이다. 그러나 실제 정치 현장에서는 자유주의적 가치(소수자 권리, 표현의 자유, 재산권)와 민주주의적 요구(다수의 의지, 평등, 참여)가 충돌하는 장면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충돌을 '이념 대립'이나 '진영 논리'로만 보는 것은 피상적이다. 그 근저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구조적 긴장이 놓여 있다.
대학지성 In&Out에 실린 이 글은 정치철학의 고전적 논쟁을 압축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콩스탕에서 롤스와 하버마스까지, 200년에 걸친 사유의 흐름을 하나의 기사 안에 담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핵심 구조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독성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동근원성과 상호 의존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문장이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되 서로 당기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 이것을 '모순'이 아니라 '긴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모순은 해소되어야 하지만, 긴장은 유지될 수 있고, 때로는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가 정치적 수사로 소비될 때, 그 두 단어 사이의 복잡한 철학적 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이 글은 그 차이를 메워주는 좋은 출발점이다.
초안 · 블로그 포스팅용 정리 · 읽고 수정·보충 예정
출처: 대학지성 In&Out,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동근원성과 긴장」 (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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